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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혼자 아프지 말고. (6) 2008/06/13
  2. 아디스아바바의 라자냐 (2) 2008/03/24

혼자서 아프지 말고!
그게 젤 서러워

맞아,
또 말라리아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이번에는 약간 다른 버전,
같은 상황이라도 느꼈던 것들은
말 그대로 백만가지가 넘으니까,
그 중 말하지 않았던 경험.

뭔데?

나는 그러니까 이제 혼자서 아픈 건 사실 생각보다
엄청 잘 견디게 된 거야.
두 번째로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아프리카에서 휴양지로 유명한,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에 있었거든
한국인들에 있어서 괌 정도랄까, 하여튼 그런 느낌.

어떤 분위긴지 알 것 같아.

그래, 야자수가 있고, 하얀 모래가 있고, 해먹이 있고,
바다는 상투적인 에메랄드 빛, 언제나 들어가도 딱 좋은 바닷물 온도,
뭐 그런 곳.
왜 그리고 그런 곳엔 말이야,
괜찮은 바닷가 옆으로 호텔 촌이라고 해야 하나,
커플이나 가족 단위로 쓸 수 있는 개인적인 움막(?)들이
각각 세워진 일종의 리조트들이 섬에 널려 있잖아.

그런 델 니가 왜 가니?
혼자였잖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해변을 가고프면 그 섬의 유일한 번화가에서 차를 타고
그나마 길이 있는 섬 중앙 부분에서 내려서,
숲을 헤치고 해변까지 가야하는 거야.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렇게까지 해서 바닷가에 가진 않잖아?
다들 지무시라고 하던가 하는 봉고차에 대량의 여행객들을 태우고
한 번에 그 해안가로 가게 되는 거지.
섬인데도 바다를 보려면 그런 방법밖에 없고,
숙소에 대한 선택의 여지도 너무나 협소했어.

그래, 알았어,
근데 그래서 말라리아 이야기는 언제 나오는 거야?

들어봐, 이제 나오니까.
그 섬의 도심지에서 하룻밤을 보낼 때 말이야.
싼 호텔에서 세팅해준 구멍이 난 모기장을 테이프로 철저히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발견하지 못했던 모기장의 구멍을 발견했어.
하루 정도야 뭐, 라고 생각했는데-
그 승합차를 탄 순간부터, 말라리아에 대한 고유한 느낌이 오는 거야.

그런 느낌이 있어?

응,
너무나도 확연하게, 부정할 수 없는 이 병이구나 하는 느낌이 말라리아에는 있어.
맹장염이나 편두통처럼 특정한 부위가 아픈 것도 아닌데
몸에서 '이건 말라리아야' 라는 말을 마구 쏟아내는 듯한 그런 느낌.

하지만, 난 이미 버스에 탔고 돌아갈 수도 없고 정신이 없잖아?
그 느낌이라는 것이 마치 점점 의식을 놓고 싶어지는 그런 거라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돼.
잠깐의 기절이 무한 반복.
그러니까 잠시 기절했다가 깨면 해변에 도착, 다시 자다가 깨면 또 다른 해변
이런 식이었던 거야. 그런데 그나마도 그 해변에 있는 리조트는 비싸서
그렇게 아픈 대도 흥정을 하고 자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우기까지 했지.

도대체, 넌.

나도 내 몸에 대한, 혹은 건강에 대한 믿음이 너무 과했었던 거지.
그러다가 도미토리방이 있는 리조트에 운전사가 내려줬어,
그 리조트가 사람은 없지만 아는 사람만 오는 아주 조용하고도 너무나 아름다운 그런 곳이었어.
그건 일종의 불행과 행운은 함께 오는 그런 경험의 시작이었던 거야.
그때 그곳이 처음부터 목적이었던 영국인 커플과 함께 내렸지.

그래서? 걔들이 좀 도와줬니?

글쎄.
아무래도 말라리아에 걸린 것 같다니까 괜찮으냐고 한 두어 번 챙겨주긴 했지.
그것만으로도 감사했지.
하지만 그리곤 한 30평은 족히 넘어 보이고
침대가 25개가 쫙 펼쳐져 있는 도미토리방으로 나 혼자 들어갔어.
유일한 도미토리 손님이었어, 내가.
아까 말했듯, 이런 곳에는 기본적으로 다들 hut에 자기만의 공간에 들어가니까.
그 커플도 마찬가지였고.

그게 불행이지,
혼자 25개의 침대 중 맨 마지막 침대에 누워 기절하고 깨고 정확히 24시간을 그렇게 앓았어.
나 한국에 와서 재발했을 때 119에 실려갔잖아, 파랗게 질려서. 그런 상태였던 거야, 딱 그대로.
너무 아파서 잠도 오질 않아, 신음은 저절로 나오고, 그러다가 기절해버리는 거지.
약을 먹고 물을 마시고, 아무런 음식을 먹을 수조차 없었어. 아니 일어나지도 못했으니까.
정말로 너무 아파 울면서 진심으로 그냥 계속 기절해있었으면,
아예 일어나지 못했으면 하고 바랐어.
기절하고 정신이 들 때마다 옆의 빈 많은 침대을 보면서,
마치 내가 유령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어.
다음번 정신이 들 때도 계속 아프면 응급실로 가자고 생각을 했었지,
한 스무 번은 넘게 그랬었나봐.

....

아프리카 말라리아는 한국형이랑 달라서 그렇게 하루가 미친 듯이 아프고 나면
그 다음 날은 거짓말처럼 괜찮아. 마치 평생 걸린 몸살감기가 하루에 몰려서 오는 것과 같거든.
그때부터는 나름 행운이었지, 휴양하기에 여기만큼 좋은 곳이 어디에 있겠어?
해먹에서 낮잠을 자고, 바닷가에서 사람들과 노닥거리고, 바닷물에도 살짝 몸을 담그고,
그늘에서 책을 읽고, 그 해안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신선한 생선을 먹고.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 거야.

그러다가 그 영국인 커플의 hut을 볼 기회가 왔지.

그래서?

마치 행복이 상대적인 것 같았어. 나아서 다행이라고 몸이 아프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나 즐겁고 좋았는데 함께 그렇게 그런 오두막에서 즐겁게 보내는 모습에
혼자서 앓았던 내 모습이 겹쳐지는 거야. 우울 역시 상대적이지,
그 그림이 그 하얀 침대들의 배경들이 어찌나 회색빛이었는지.
다시는 혼자서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했어. 너무나 내가 불행하게 느껴졌거든.

하지만 우스운 건,
혼자서 다니지 않겠다는 것에 대한 이행보다는,
혼자서 아파도 더는 그때보다는 서럽지 않겠구나 싶어서
별로 혼자인 것이 두렵지 않다는 거야.

정말 우습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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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nzibar, Tanzania


2008/06/13 00:28 2008/06/13 00:28
라쟈냐를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곳은 놀랍게도 에티오피아다. 그 전부터 그리던 라자냐의 이상향이라는 것이 에티오피아의 라자냐라는 거다. 에티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는 놀랍도록 우울하고 가난하고 작은 도시다. 넓은 호텔 부지나 정부청사(대통령궁)을 제외한 곳에서는 녹색의 식물도 보기 어려운 황토색의 그런 도시, 그나마 그 럭셔리한 궁 옆에는 쓰러져가는 초가집들과 집없는 사람들이 당연하게도 있다. 여튼 그런 곳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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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s Ababa


그런데 거기서 최고의 라쟈냐를 조우하게 된 것은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거창하게 시작한 김에 계속 거창하게 나가고 있다. 내가 묵던 싸구려 호텔 근처에 허름한 이층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뭐 에피오피아 내에서는 나름 비싼 식당이지만, 우리나라 80년대 치킨집 분위기로 뭔가 묘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싸구려 인스턴트 취향의, 뭔가 미묘하게 체인점이 있을 것 같은 그런 이탈리아 음식점이었다.

에티오피아 음식은 대체로 야채나 나물(?)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었고, 전통음식인 '인제라'도 그 독특한 향에도 불구하고 꽤나 맛있는 편이었지만, 계속되는 양고기 러쉬라던가 달걀을 이용한 요리에는 진저리가 났다. 조금은 익숙한 요리가 먹고 싶은 날이 계속되고, 내 향수병도 아주 극도에 달했던 시기였다. 날씨는 점점 우기를 향해가서 하루에도 몇 번 씩 날씨가 변하는 그런 아디스아바바에서의 하루하루. 그 하루하루를 난 그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매 끼니를 떼우곤 했다. 그 식당에 만난 이탈리아 아저씨는 자기네들 맛과 거의 흡사한 맛을 낸다며 매우 흡족해 했고, 여하튼 우리는 그 레스토랑의 메뉴를 무작위로 다 골라 먹기 시작했다. 피자니 파스타니 라자냐니 하는 그런 것들.

그 레스토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메뉴가 라자냐였다. 아니 이렇게 맛있을 수가. 라자냐라는 말은 원래 구운 접시라는 뜻이라고 했던가. 뜨겁게 달궈진 라자냐 접시에 널찍널찍하게 자리 잡은 면이라고 해야 할지 반죽이라고 해야할지 그런 것들이 토마토 소스와 겹겹히 쌓여서 신선한 치즈 정도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뜨거운 기운이 가득, 그 세가지 재료만 들어있는 그런 단순한 라자냐가 어찌나 맛있었던지! 자연스럽게 늘어지는 치즈와 신선한 토마토소스,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라자냐 면. 아 내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느낌까지 온전히 그리지 못했으리! 너무나 진심으로 그리워져버리는 거다. 아디스아바바의 라자냐라는 그 억지스럽게 보이는 그 조합이.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나라들 중에서 유럽의 지배를 받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고 했던가,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강했는데 아주 잠깐 이탈리아의 침입이 있었다. 침입이라 해야 할지 잠시간의 통치라고 해야할지, 미묘한 상태. 여튼 그 때 먹을 것에 대해서라면 양보없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화덕이니 뭐니 재료들을 통째로 다 싸들고 와서 그 맛을 내려고 했다고. 그 짧은 기간에!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피자니 라자냐니 하는 것들도 물론 엄청나게 맛있었지만, 그 향취랄까 풍류랄까- 괴리감이랄까. 단순히 눈으로 느꼈던 허기를 배로 채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맛있게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에티오피아에서의 라자냐는 나에게 너무나 깊은 인상을 남겨서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음식은 생각나지도 않는거다. 아마 이런 것이 아프리카를 간 경험의 일부라고 생각되지만ㅡ 대체할 수 없는 파워풀함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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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s Ababa



아직도 그 거리의 풍경과 그 레스토랑의 위치와 맛이 너무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다시 아디스아바바의 어딘가에 던져놔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든다. 나름 엄청 돈이 많이 들었을 이탈리아 국기색으로 꾸며놓은 프라스틱 의자가 빼곡했던 그 식당과, 싸구려 호텔의 냄새와, 그 우기의 냄새, 그리고 그 중에서 최고로 맛있었던 라자냐의 향과 맛. 아, 내일은 기필코 라자냐를 먹어야겠다.

2008/03/24 16:12 2008/03/24 1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