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 없이, 두서 없이, 나른한 일요일 저녁에 TV 채널을 마구 바꾸다가 어메이징 레이스가 나와 잠시 리모콘 조작을 멈췄다. 항상 오래 보지는 않지만, 어메이징 레이스에서 촬영된 곳을 확인하는 습관이 남아 있다. 멍- 하게 보고 있는데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싶었더니 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많이 아니 가본 나라가 얼마 되지 않지만, 어쩐지 그 분위기라는 것은 사뭇 비슷해서 아프리카의 그 어떤 나라가 나와도 그저 반갑다. 보통은 어디인지 확인만 하고 채널을 돌리기 일쑤인데, 왠지 반가운 생각에 잠시 보고 있었다.
그 때, (미국 프로니 대체적으로 미국인이 출연하지만) 미국인 처럼 보이는 모녀가 케이프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빈곤가를,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만류하지만, 어떠한 사정인지 간다. 나레이션으로 '사람도 친절하고, 너무나 인간적이고 좋다. 참 XX(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가 아이들에게 썬글라스를 주라고 했지.' 하고 하면서 얘들을 불러 썬글라스를 나눠준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사는 아이들은 공짜로 받은 그 물건에 너무나 기뻐하고, 준 사람도 그 기뻐하는 모습에 이렇게 싼 물건에도 저렇게 기뻐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뭉클해한다. 뭐 물론 카메라는 멋지게 페이드 아웃.
전후를 잘 보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그 선글라스를 아이들에게 주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그 영상을 보는 순간, 분개했다.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신네들의 그런 싸구려 동정심 때문에 저 아이들은 관광객에게 구걸하는 것 밖에 배우지 않는다고! 운 좋으면 공짜로 물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 이상 그들 삶에 더 노력할 부분이 보이겠냐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썬글라스를 주는 것으로, 지금까지 먹을 것이 없어- 일사병으로- 그런 것으로 죽어가는 몇 천명의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쉽게도 씻어진냐며 마구 비난했다. 그런 값싼 동정으로 양심을 속이고 그 때의 허무맹랑한 감상에 자신이 작은 선행에 행복해하는 그 모습에 배알이 뒤틀렸다. 젠장, 제기랄. 당신네들 때문에 쟤네들은 계속 저렇게 빌어먹을 거라고!
마음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그런 구역질에 한 참을 열받아 있다가, 저 모든 말들은 결국 나에게 하는 말과 다름이 없음을 발견한다. 제기랄, 그래서 나는 무엇을 했냐고. 차라리 저런 값싼 동정이라도 나을까. 단연코 아니라고는 해도, 차라리 저 값싼 동정으로 백내장을 방지에 목숨을 이어가는 편이, 그냥 죽는 편 보다 나을까. 뭐가 다르냐. 내가 안타까워 한 들, 설득을 한 들, 직접적인 도움은 하나 없는데. 사회에 대한, 세계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무력감은 항상 나를 저 밑 끝까지 좌절시키고.
결국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 행복함을 느끼는 것 뿐이라면, 쉽지는 않지만 해나갈 자신은 있다. 하지만, 그들을 모른 척 하면서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젠장, 공부는 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다면, 책을 보내달라고 했던, 에티오피아의 많은 친구들이.

사진2장임::에티오피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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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흥분했더니 글이 저모양이다
어메이징레이스, 저도 외국풍경을 보는 재미로 즐겨봤었는데 그게 유럽이 아닌 나라로만 가면 보는 제가 내내 인상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닫고 보기를 그만두었습니다. 쭈욱 쓰신 글을 읽으니 인도 갔을 때 제가 느꼈던 온갖 감정이 살아나네요.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최선'이란 결과를 놓고 보면 그도 꽤 안일한 것 같아서 지금도 불편합니다.
티벳글 찾아보려고 다시 들어와서 니 여행기 다시 읽는다.ㅇㅎㅎㅎ 다시 보니 재밌고 참 좋은 여행기들이야~~ 아깝다. 빨랑 책내라.ㅎㅎㅎ 저런 죄의식을 조금이나마 씻는 방법은, 월드비전에 2만원씩 후원하는거! 내가 보낸 2만원으로 아프리카의 한 가족이 생활의 <기반>을 마련하는데..그러니까 먹이를 던져주는게 아니라 먹이를 찾는 길을 열어준다는데(한비야가 쓴 후원소개에 이런식으로 나와있었어). 죄의식이 많이 씻겨지는거 같오..